거짓정보를 흘리는 통일교는 물러가라)문용명씨가 하늘의 계시로崑崙丸(콘론마루)를 안탔다고 한다.
崑崙丸(콘론마루)란 일제당시 관부연락선으로,
일제말기 44년도에 미해군의 잠수함에 의하여 격침을 당한 페리입니다.
통일교책에 "수난의 현장"이란 책이 있는데 崑崙丸(콘론마루)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이야기가 사실인지 거짓인지는 문용명씨 이외는 아무도 알 수가 없읍니다.
"수난의 현장"이란 책은 단지 문용명씨의 이야기를 듣고 그대로 옮긴것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도 그럴것이 간부들도 그의 이야기를 증명할 만한 능력도 없거니와 그런것에 관심도 없겠지요.
일반신자들은 알길이 없으니까 그저 그건가 보다 하겠지요.
단지 그의 이야기중에 승선자명단이란 이야기가 나옵니다.
승선자명단이란 崑崙丸(콘론마루)가 격침후 아사히신문이 며칠 지난뒤에 생존자 명단과 사망자 명단을
게재한 명단외에 존재를 하지 않읍니다.
도서관에 가서 당시의 아사히신문에 게재된 승선자 명단을 확인하였읍니다.
그러나 문용명이나 에모토 류메이라고 하는 이름은 존재를 하지 않았읍니다.
문용맹할배요. 또 다른 승선자명단이 있으면 가르쳐 주세요.
내가 한번 찾아 볼테니까요.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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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선명씨가 2차대전이 한창이던중, 일본에서 조선으로 돌아 오기 위하여 시모노세키에서
崑崙丸(콘론마루)를 탈려고 하였는데, 하늘의 계시를 받아 다음 배편으로 승선을 연기하엿는데,
먼저간 崑崙丸(콘론마루)가 미해군의 잠수함에 격침되어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다고
하나님과 연관짓는 이야기가 "수난의 현장"이라는 내부자료에서 밝히고 있읍니다.
근데, N이라고 하는 일본의 전간부가 문선명씨의 행적에 나름대로 조사를 했던 모양이었읍니다.
조사결과 통일교가 거짓이라는 것을 알고 그만두었다고 합니다.-요즘은 가끔가다 연락이 옵니다. 생활이 빠듯하다 합니다-
이하 崑崙丸(콘론마루)에 대한 기사내용입니다.
http://www.aa.cyberhome.ne.jp/~museum/19431005konron/konron.htm
● 철도 연락선 崑崙丸(콘론마루)
시모노세키와 한반도의 남단 부산을 연결하는 관부연락선 항로는, 당시 철도성이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崑崙丸(콘론마루)의 침몰은「철도 연락선의 취항 이래 최초의 큰사고였기 때문에, 관계자에게 준 충격은 컸다」라고 일본 국유철도 백년사는 말하고 있습니다.
전시중도 대륙과 일본 내륙의 화물·여객 교통은 증가해「이용자는 희망하는 배편에 승선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시모노세키에는 대륙 전용의 화물이 쌓여 산을 이루었다」라고 하는 가운데 철도성은 체면을 걸고「天山丸(텐잔마루」를 쇼와 17년 9월 27일에, 동형선「崑崙丸(콘론마루)」을 다음해 쇼와 18년 4월 12일에 취항시켰읍니다. 각각 완성시에는 지금까지의 일본 상선의 최고 속기록을 바꿔바른 우수 고속선이었읍니다.
취항으로부터 불과 반년 후의 10월 5일, 대마도 해협에까지 비집고 들어가고 있던 미 잠수함 SS238·워후의 뇌격을 받아 즉시 해군 항공기나 함정의 구조 활동이 개시되었지만, 선원·승객합해 583명의 사망자를 냈습니다. 상선의 손실은 전시하의 일본에서는 대부분 보도되지 않았읍니다만, 高千穂丸(타카치호마루)나 大和丸(다이와마루)과 같이 민간인을 다수 실은 근해 항로 여객선의 경우 은폐할려고 하지 않았을까요? , 10월 8일의 신문에는「崑崙丸(콘론마루)침몰」의 기사가, 12일에는 상세한 희생자의 명부가 게재되고 있습니다.
조난자 속에 스케가와·카토라고 하는 두 명의 중의원 의원이 있었읍니다. 두사람은 만주의 농업 시찰단에 참가해, 뭔가의 사정으로 인해 일행으로부터 1편 늦은 崑崙丸(콘론마루)에 승선해 사고를 당했읍니다. 먼저가 부산에 도착하여, 부두에서 崑崙丸(콘론마루)의 도착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던 이 시찰단의 단장은, 전후의 농지 개혁이나 일중국교 회복에 공헌한 마쓰무라 겐조씨였습니다. 이 두 명의 죽음은 마쓰무라 겐조씨에 있어서도 대단한 충격이였던 것 같습니다.
● 천황의 浴室
워후는, 일본의 상선 약 20척을 가라앉힌 에이스급의 잠수함이였습니다. 미국 해군이「천황의 浴室」이라고 부른 일본해는, 대마도·츠가루·소우야의 해협을 엄중한 경계로 봉쇄되고 있었습니다만, 그런데도 미 잠수함은 과감하게 잠입을 시도하였읍니다. 다도 레이·W·모튼 중령을 함장으로 하는 워후가 일본해에 2회째의 침입에 성공한 것은 9월 20 일경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만, 정확한 일시는 불분명합니다. 전과를 올린 워후입니다만, 소야해협으로부터 탈출을 도모하고 있는 곳을 지상의 포대에 발견됩니다. 잠항한 적잠수함에 대해서, 오미나토 항공대의 항공기와 제5 함대 소속의 구잠정 3척은 4시간에 걸쳐서 40발의 소형 폭탄과 63발의 폭뢰를 투하했습니다. 이 사이 바다 속에서 어떤 힘든 싸움이 있었는지, 생존자가 없기 때문에 아무것도 전해지고 있지 않습니다. 워후의 승무원 80명은 이 전투를 마지막으로 바다 속에서 소식을 끊었습니다.
현재 시모노세키시의 히요리야마 공원에는 崑崙丸(콘론마루)의 희생자를, 소야미사키에는 워후의 전사 승무원을 애도하는 위령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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崑崙丸(콘론마루)를 격침시킨 워후의 모습
http://www.aa.cyberhome.ne.jp/~museum/19431005konron/2601konron-sub.htm
ワーフー 参考: 木俣滋郎/潜水艦攻撃/光人社/2000年より |
![]() ガトー級潜水艦 ワーフ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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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줄 알았다면 복사를 해 두는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