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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란숙의 수기) 남편으로 부터 받은 수모끝에 태어난 딸

최대어 2009. 7. 11. 05:56

 효진은 좀처럼 집에 붙어 있지 않았다. 흔히 있는 일이지만, 심심하면 칠일간수련회 “21일수련회 하여 수련회에 참석한다는 핑계로 한국에 가곤 하였다. 이런 핑계는 하나님을 가까이 한다는 목적으로 교회의 연수 프로그램이다. 라고 핑계를 대곤 핑계와 정반대로, 서울에서 들려오는 소문은, 효진이가 자유시간을 술집의 여종업원들이나 옛애인들과 어울려 다닌다고 하는 것이었다.

 이스트 가든에 있을 때는, 매우 아프다고 하는 나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매일밤 섹스를 요구하였다. 통증보다도 더욱 쇽크였던 것은 , 임신으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살이찌는 나의 웨스트와 엉덩이에 대하여 그가 보여준 혐오감이었다. ……….

그는 나를 뚱보또는 추녀라고 말했다. 섹스를 할때는 안봐도 좋토록 , 나의 배를 뒤덮었다.

 문씨는 자주 나에게 말했다. 효진이가 하나님 앞으로 돌아 오도록, 나를 더욱더 기도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아버지가 되는 것이 얼마 안있어 그를 변화시킬것인가.

……

나는 혼자서 라마즈법의 크라스에 들어갔다. 운전수가 헬프스병원에서, 베개2개를 껴안은 나를 내렸주었다. 다른 임신부는 자신을 위해주는 남편과 함께였다. 교관은 나를, 라마즈법의 호흡과 훈련테크닉을 공부중인 간호사와 함께 주었다.

2월초순에 예정되엇던 출산을 앞두고, 엄마가 1월에 이스트 가든으로 왔다.

진통이 시작되었을때, 효진은 곁에 없었다.

출산은 3주간 늦어졌다.

효진은 한국에서 돌아 있었지만, 출산이 코앞에 다가왔음에도 불구하고, 매일밤 술집으로 놀러 나갔다.

엄마는 산통을 줄이기 위하여 나에게 집안을 걸어 다니게 하였지만, 오후10, 우리들은 드디어 의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의사는 출산이 임박햇다고 알려 주었다.

효진은 일부러 연락처를 알려 주거나 하지 않앗기에 이스트 가든의 경비원이 혼자서 차를 몰아 나와 엄마를 병원으로 데려다 주었다.

나는 무서움에 떨었다.

이스트 가든에서 헬프스병원까지의 10여분간의 사이에도 틍증은 점점 더해 갔다.

나는 나의 신체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 어떤 것인가 이해할 나이가 아니었다.

나는 학교를 한번도 쉬지 않았다.

진통과 출산에 관한 책도 읽었다.

하지만 진통이 있을때마다 배가 찢어 지는 듯한 통증에 시달렸다.

차안에서 침착하게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도로를 돌떄마다 자궁속을 칼로 베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

효진은 출산중에 한번도 병원에 오지 않앗다.

아침에 왔을 때는 술이 덜깬 상태였다.

그리고 오자마자 금방 되돌아 갔다.

진통끝에 여자애가 태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