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의 신부와 바람둥이 남편 그리고 결혼직후 무리한 성관계
. 한국속담에 부전자전이라는 말이 있읍니다. 홍란숙씨의 수기를 통해 문선명씨의 아들 문효진이가 어떤 인물이었던가를 추측해 보도록 하겠읍니다.
이하수기 내용. ..................... 문씨 애들의 학교예정과 맞추기 위하여, 결혼식은 1월7일로 결정되었다. 결혼허가증은 없었다. 우리들은 혈액검사도 받지 않았다. 나는 뉴욕주가 결정해 논 결혼의 법정연령보다 한살 아래였다. 효진과 나의 “성혼”은 법적으로 인연을 맺었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것을 나는 몰랐고, 마음에도 두지 않았다. 문선명씨의 권위만이 중요하였다. ….. 엄마는 문씨부인에게, 결혼미용을 미용사에게 부탁할까 얼떨까를 물어 보았다. 문씨부인은 말했다. 쓸데없는 돈을 쓰는것 밖에 되지 않는다. 인진이가 도와줄 것이다. 나는 인진을 “참가정”의 일원으로 숭배하였지만, 자신의 친구로서 신뢰가 갈 수 있을까 어떨까는 의문이 들었다. ….. 결혼식전에, 나를 보러 온 효진은 충분히 만족한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러나 나는, 자신이 그를 행복의 원천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이날, 그는 부친이 가장 사랑하는 아들, 검은 양이 아닌 착한 아들이었다. 양친을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하여, 엉클어진 장발을 짜를 정도로 착한 아들이었다. …… 내가 도서실과 미래로 이어지는 긴 복도를 혼자 걸어 가고 있을때, 연배의 한국인 여성이 속삭였다. “미소를 지으세요. 그렇지 않으면 첫애는 딸이 되니까요: 이 조언을 거부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 도서실에 들어가, 흰의식복을 입은 문씨부부가 있는 방으로 들어 갔을 때, 양측에는 사람들이 가득차 있었다. 도서실은 사람들로 가득차 무척 무더웠다. 그 많은 사람들중에 양친을 제외하고, 나는 전연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 베르베티아의 계단위에서 이루어진 한국식 의식은 보다 적은 인원으로, 출석자는 가족과 교회간부들이었다. 문씨일가는 인생에서 가장 중대한 것을 급히 서둘러서 치루는 것을, 나는 그것을 배워는 중이었다. 그러니까 호출되었을 때는, 겨우 머리를 전통적인 스타일로 고칠 수 있는 시간이 있을까 말까할 정도였다. ….. 실제의 의식에 대해서 나는 거의 기억을 하지 있지않다. 너무 피곤했기에, 주의를 집중시키기 위하여, 교회의 공식 카메라맨의 카메라 플래시를 의지하였다. 나는 “여기에 서라”든가 “이렇게 말해라”등의 명령을 고맙게 생각했다. 움직이고 있으면 다운할 염려는 없으니까.
맨해턴센터연회장에서 열리는 피로연을 위하여 옷을 갈아 입기 위하여 운전수가 효진과 나를 “이스턴 가든”까지 태워 주었다. …… 나는 우리들의 스츠케이스가 넒은 침실로 운반되는 것을 보았다. 효진은 어떻게든 섹스를 하고 싶어 했다. 나는 밤이 될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부탁했다. “참부모님”은 우리들이 1시간 이내에 준비를 하도록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그는 참을려고 하지 않았다. 나는 그의 앞에서 알몸이 되는 것을 극히 꺼려했다. 나는 옷을 벗기 위하여 베드에 미끄러지듯 들어갔다. 나는 여태까지 14년간, 이 습관을 계속하였다. 엄마가 준 책을 읽었지만, 섹스의 충격에 대해서는, 전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효진이 나의 위를 올라탔을 때, 나는 어떤것이 일어날지 전연 몰랐다. 그는 처녀를 뺴앗는 것에 흥분하여, 매우 난폭하였다. 그는 나에게 무엇을 할 것인가, 어디를 만질 것인가 지시를 하였다. 나는 그저 그의 지시대로 움직였다. 그가 나의 속을 파고 들었을 때,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통증으로 인한 신음소리를 내지 않는 것이었다. 그가 끊내기 까지의 시간은 그다지 걸리지 않았지만, 몇시간의 사이, 나의 내측은 통증으로 견딜 수 없을 정도였다. “이것이 섹스로구나”라고 나는 생각하였다. 나는 아픔과 피로, 그리고 굴욕감으로 울기 시작했다. 우리들은 기다리지 않으면 안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효진은 나를 속일려고 했다. 그는 알고 싶어했다. “즐겁지 않았던 거야?” 나는, 여성의 아픔을 표현하기 위하여 어린애의 표현을 사용하여, “아팠어”라고 말했다. 그가 그런 반응을 물은것은 처음이라고 말했길레, 한국에서 들었던 소문은 정말이라고 알게 되었다. 효진은 애인이 여럿있다. 그가 자신의 죄를, 이런 식으로 무신경적으로 거만한 태로로 고백것에 나는 충격을 받아, 상처를 받았다. 그의 날카로운 고성과, 성난 질책으로 억지로 우는 것을 그치게 할떄 까지, 나는 더욱 심하게 울기를 계속했다. 적어도 나는 섹스가 무엇이고, 나의 남편이 누군가를 알게 되었다. 섹스는 고통스런 것이고, 남편은 그것보다 나을리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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