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란숙의 수기) 15세의 아내 그리고 학생역할의 2중생활
홍란숙씨가 결혼을 한후, 15세의 나이에 학교에도 다니지 않으면 안되었던, 아내로서 학생으로서 2중의 생활을 하게 되었읍니다.
이하.
나는 문선명씨부부의 아침식탁에서 인사를 하기 위하여,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났다.
저택의 주방에서는, 아침준비로 대단히 부산하였다.
문씨부부가 아침 몇시에 식탁에 올지는 누구도 확실히 몰랐지만, 문씨부부는 식탁에 가면 즉시 식사를 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해 놓기를 바랐다.
2명의 요리인과 3명의 도우미가 메인코스를 준비하였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문씨부부가 다른 음식을 먹고 싶어하면 대댠히 분주해 지기 마련이었다.
나는 문씨부부가 여러 교회간부들과 식탁에 않기 전에, 부억에서 간단을 식사를 마쳤다.
간부들이 방문하면 무룹을 꿇고 인사를 하고, 그만 가봐도 좋다고 하는 말이 나오기까지 기다렸고, 학교는 운전수가 학교까지 태워다 주었다.
아침은 대체로 대단히 피곤한 시간이었다.
왜냐하면 효진은 밤12시이전에 귀가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고, 귀가하면 언제나 섹스를 요구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는 간간히 술에 취했고 담배냄새를 풍겼다.
나는 제발 나를 내버려 두기를 바라면서 자는 시늉을 했지만, 나를 내버려 두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나는 그의 요구에 봉사하기 위하여 여기에 있는 것이었다.
내자신의 요구는 문제시 되지 않았다.
아침엔 효진보다 먼저 일어나서 조용히 아침에 할 일들을 챙겼다.
가장 신경쓰이는 남편을 깨울 위험은 거의 없었다.
그는 오후가 지날 무렵까지 잤다.
가끔은 내가 학교에서 돌아 올떄까지 잘때도 있었다.
그는 일어나면, 샤워를 하고, 그리고 나서 맨해턴으로 놀러가, 마음에 드는 나이트클럽,
라운지, 코리안바를 배회하면서 돌아 다녔다.
19세였지만, 친해진 한국인경영술집에서 술을 주문하는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당시 15였던 흥진과 인진을, 심야에 술을 마시기 위하여 가는 경우도 있었다.
한번뿐이었지만 나도 권유를 받아 같이 간적이 있었다.
우리들은 차로 답배연기가 충만한 코리안 나이트클럽에 갔었다.
문씨의 자녀들이 자주가는 것이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었다.
호스테스들은 모두가 친절히 인사를 하였다.
웨이터가 골드 테키라 한병과 말보로 라이트를 한갑 가지고 왔다.
인진과 흥진은 효진과 함께 주문한 술을 마셨다.
나는 코카콜라를 마셨다.
나는 울지 않으려고 하였지만, 필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눈물이 흘러 나왔다.
우리들은 이런 장소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어린시절, 나는 쭉 통일교의 일원이었지 않았더낙, 문선명씨의 신도는 알콜을 마시지 않았으며, 담배를 배우지 않는다고 배웠다.
“참부모”가 세계중을 여행해서 비난했던 행동을, 문씨의 “참자녀님”에게 일어나고 있는 사이에, 어째서 나는 그들과 함께 이런 장소에 않아 있을 수가 있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