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란숙의文家탈출기

홍란숙의 수기) 고교생 며느리는 한학자의 몸종에 지나지 않았다.

최대어 2015. 2. 15. 17:58

 문선명씨의 여러 숫한 거짓말들 중에, 16세의 부활절날꿈에 예수로 부터 사명을 부여 받았다

자신은 적임자가 아니지만 예수의 간곡한 부탁에 마지못해  사명을 이어 받았다라던가

문선명씨는 누구보다 늦게 자고 누구보다 먼저 일어나 세계를 걱정하고 세계를 위하여 헌신적으로 

일을 하였다 등의 거짓말은 어떻게 증명할  있을까 하는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었읍니다.

프라이버시에 관한 거짓말들이라 증명한다는게 거의 불가능으로 생각했읍니다(개인적으로)

그러나 부활절날의 거짓말은 내부문서를 통하여 거짓말임을 객관적으로 증명할  있었읍니다

그리고누구보다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난다는 거짓말은 어떻게 증명한다는 것이 사실상 블가능하리라 

생각했읍니다. 교회간부들도 사실을 말해 주지 않기 때문에 말입니다.

하지만이번 홍란숙씨의 수기를 통하여 그것이 거짓말이었음을 알게 되었읍니다.

홍란숙씨나 관리인들이 문씨부부보다 먼저 일어나 침실밖에서 대기 하도록 명령받았다는 표현이 이를

말해 주고 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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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여름, “아버님 케이프콧도선단의 프로빈스타운에도 집을 한채 빌려더욱더 낙시가   

있도록 하였다.

동행한 주방담당형제자매들이 식사준비를 하고 있는 사이해안에서 아버님과 자녀들의 뒷바라지를

하는 것이 나의 책무였다나는 해안에서 가족들의식사급식을 하고해수욕을 하고  자녀들의 몸을

닦아 주는 대체로 한학자의 시중을 드는 역할을 하였다이것은 마지못하여 하는 만족할 만한 

일이라고는   없었다한학자가 수영하는 동안나는 수영을  수가 없었다한학자가 산책을 

하기 까지는나는 산책을  수가 없었다한학자를 따라 붙어 있지 않으면 화장실에도  수가 

없었다나는 그곳에서 한학자의 시녀였으며그이상 그이하도 아니었다그날 나는 한학자의 

애들한학자의 요리인들한학자의 보좌인들과 함께마루의 침낭에서 잤다.

한학자는 우리들에게여름 바캉스를 제공하였다고 자랑하였지만나에게는 휴식을 취한것은 한학자와

그녀의 자녀들뿐이라고 여겼다.

 나자신이 임신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나는 나자신이 문가의 어린 하녀인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이스트 가든에서는문씨부부가 집에 있을 때는,그들보다 먼저 일어나그들이 일어날때 침실 밖에

 기다리도록 명령받았다며느리로서문씨부부의 식사를 준비하고하루중한학자의 시중을 드는

것이 나의 의무였다학교에 안갈때는아니면 주말에는아침부터 밤까지 옆에 있었다 대부분의 

시간무엇인가를 가져 오게하는 부름을 받기 위해뭔가 먹을 떄는 준비를 하기 위해어딜 갈때 

따라가기 위하여 한학자로 부터 불림을 당할때를 대비하여 대기하고 있어야 하는 것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내용도 그다지 없는 한국산 멜로드라마 비데오를 함께 보면서 몇시간이고 보냈다

한학자는 그것을 즐겼고나는 그것이 매우 싫었다하지만한학자의 중간장면 등의 비평을 하는 

것에 대비하여주의하여 보지 않으면 안되었다.

 나는 다른 자녀들과 함께 부억에서 식사를 하였고다른한편 참부모님 교회간부나 내방중의 

중요인물들과 식사를 하였다우리들은탈세재판의 전개를 간헐적으로 새어나오는 말을 통해서 

알았다. “아버님 자신의 상황에 대해서우리들에게 결코 직접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문씨의 

입장에서 보면 우리들은 아직 어린애에 지나지 않았다.

 ……

나는 자주 베이비카의 연진에게 밥을 먹였다형진은 아직 아장아장 걷는 졍도였다.

나는 형진이를 부억에 있는 커다란 둥근 테이블로 부터, “이스트가든 언덕에 데리고 가서

그곳에서 야생꽃을 꺾었다나는 형수라기 보다 진정한 누나로서문씨의 애들과 함께 자랐다.

삼녀의 은진과는 동갑으로문씨가 뉴욕주의 포토쟈비스에 구입한 목장 -호프.팜에 갈떄도 있었다

은진은 승마가 장기로말을 아주 좋아 하였다.

문씨가 자금을 제공하고 있었던 한국 올림픽승마단도 그곳에서 연습하였다.

문씨의 자금은 커다난 영향을 발휘하였다.

은진은 1988 서울 올림픽승마단의 멤버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