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란숙의 수기) 문효진의 타락생활과 도가 넘는 가정폭력
효진은, 문성명씨가 나의 아버지를 공격한 이후로는 기고만장하였다.
그것과 때맞춰 효진은 나에 대한 공격도 더더욱 격렬해졌다.
93년에는, 코카인을 상습적으로 복용하기 시작했다.
그는 몇칠이고 계속해서 우리들의 주침실에 틀어박혔기에, 나는 할 수 없이 예비의류를 애들의 크로젯에 넣고, 애들과 같이 침실을 사용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일주일간 중 코카인을 흡입하고, 포르노비데오 보고난 다음, 어느날 밤, 그는 나를 자신의 방으로 오라고 말했다.
나는 가는 것을 거절하였다.
그는 고성을 발하면서 미친듯이 외치며, 우리드이 교회관계의 교실로 사용하고 있는 계단밑에 있는 방으로 까지 쫓아왔다.
그는 커피테이블을 넘어 뜨리고, 나를 방구석에 밀어 붙이고 벽면을 응시하였다.
그의 얼굴은 나의 얼굴과 수센치정도 밖에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911에 전화를 할려고 전화기로 뛰어 갔다.
“경찰을 부를 거예요”라고 나는 경고했다.
그러나 그는 수화기를 나의 손으로 부터 뻇아 떨어 뜨렸다.
“잘도 경찰을 부를려고 하네” 라고 그는 악을 섰다.
“그네들은 여기선 어떤 권리도 없어. 넌 내가 경찰을 부르면 겁낼줄 알았지, 내가 메시아의 아들이”
그는 다음엔 무엇을 할까 모르겠기에, 나는 가능한한 큰소리로 도움을 청했다.
교실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경비원이나 주방담당의 “형제자매”들, 유모들 전원은 나의 애절한 외침이 들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누구도 오지 않았다.
누가 문효진에게 덤벼들 용기를 가지고나 있을 것인가?
그는 나의 애절한 외침이 도움이 안된다는 것을 알고 웃으며, 더이상 재미가 없는듯 교실을 떠났다.
나는 오빠에게 전화를 하여, 경찰에 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나는 눈믈을 흘리면서, 현관사이를 슬거머니 빠져 나왔다.
그곳에서 나의 4명의 애중 3명이, 계단에 몸을 붙이고 있었다.
애들은 훌쩍훌쩍 울고 있었다.
“엄마 가지마” 내가 현관으로 걸어 갈려고 하자 애들이 외쳤다.
“곧장 돌아 올테니까 걱정하지마”라고 나는 애들의 눈물을 훔쳐주며 말했다.
나는 아빈톤 경찰서로 곧바로 차를 몰았다.
그러나 일단 주차장에 들어가니 어떻게 하면 좋을까, 아니면 왜 정말 여길 왔던가 생각이 나질 않았다.
나는 변함없이 공포와 위협에 떨고 있었다.
나는 주차장에서 긴시간을 않아서, 나를 인도해 주기를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나는 지금까지 11년간,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밖의 세게로 부터 나의 인생의 존재를 감추고 지내왔다.
경찰서 밖에 차를 세우고서, 나는 뭘하기 위해 경찰서에 간 것이었을까?
경찰관이 접수구에서 나를 쳐다 봤을때, 나는 울고 있었다.
“도움이 필요합니다” 라고 나는 말했다.
그는 나를 뒷쪽 개인방으로 안내하고, 내에게 무엇이 일어난 것이었을까를 조용히 듣고 있었다.
그는 주소를 알고 있었다.
그는 이름을 알고 있었다.
그는 놀라워 하고 있지 않은 확실해 보였다.
“갈곳은 있읍니까?”라고, 그는 알고 싶어했다. 가족은 있읍니까?”
나에게는 단지 오빠만이 있을 따름이었다.
오빠는 하버드대생이었다.
……………
경찰관은 인내심을 강했고 친절했다.
그는 나의 선택사항을 설명해 주었다.
나는 효진을 폭행용의로 소송을 할 수 있다.
나는 애들을 가정폭력희생자의 안식처로 데리고 갈 수 있다.
그러나, 마음속에선 자신이 그 어떤것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알고 있었다.
나가 할 수 있는 것은 경찰에 신고를 할 수 있는 정도.
………….
자신에게는 도망갈 장소가 없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