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명절의 차례, 또는 제사는 없애야할 인습이다.
출처: 다음 아라고 http://bbs3.agora.media.daum.net/gaia/do/story/read?articleId=336875&bbsId=S103&pageIndex=3
상당히 공감이 가서 퍼 올렸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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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중반에 어촌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상당히 어렵게 살았읍니다.
어릴땐 큰집에 제사면 모두 모여 제사밥을 먹었는데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읍니다.
밤 12시에 지내는 제사는 어린 나이에 참고 기다릴 수가 없었읍니다.
제사 지낼때 까지 자다가 할매가 깨워 줘서 제사밥을 먹고 집으로 돌아 오곤 했읍니다.
명절때는 새옷을 사입는 계기가 되었고 하루종일 쌀밥을 배터지게 먹을 수 있는 날이 되었읍니다.
그때는 제사나 명절이면 모두 큰집에 모여 일을 거들었고 명절이 지날때 까지 큰집에서 밥을 먹고 했읍니다.
물론 점점 커면서 큰집에서 밥을 먹는 날이 줄어 들었고 집에서 밥을 먹는 날이 늘어 났읍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고향에 가도 여성들이 그렇게 힘들어 했는지는 전혀 알아 차리지를 못했읍니다.
여자나 남자나 모두들 당연히 받아 들였던 제사나 명절 문화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도시에서는 그렇지 않았던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렇게 사회문제도 되지 않았는지 신문이나 방송에서
크게 보도를 하지 않았지만 가끔씩 기사를 접하곤 그런가 보다 했읍니다.
스크랩 내용에서 제사의 역사가 150년 정도라고 했는데 글고 보니 여태까지 제사의 역사에 대해서
전연 자료를 찾아 보거나 공부를 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읍니다.
막연히 오랜 옛날부터 지내오지 않았나 생각했었는데..........
전에 친구의 권유로 난중일기를 읽어 보라해서 일부 읽어 보니 왕실에 제사를 지냈다고 하는 기술이
상당히 많았다는 기억이 남아 있읍니다.
하여튼 명절날 여자들이 힘들다고 하니까 여대생들이 아르바이트로 명절날 남의 집에 설겆이나 허드렛 일을
도와준다고 하여 방송을 타고 하는 것을 보면서 98년 IMF난민이 되어 일본에 오게되어 지금까지 머물고 있는
상황입니다.
하고픈 말은,
일본이 모두가 그렇다고 할 수는 없지만 나자신이 겪은 경험담을 기술하고자 합니다.
일본도 연말연시로 보통 일주일에서 열흘간 휴가가 주어집니다.
전세계 유례가 없는 일본만의 독특한 문화라고 들었읍니다.
그리고 "오봉"이라고 하여 양력 8월 15일을 추석명절이 있읍니다.
대충 일주일 정도로 여름휴가 겸해서 쉽니다.
연시나 오봉때는 시골 처가집에 2박3일 일정으로 가족모두 데리고 다녀옵니다.
벌써 16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읍니다.
부인 언니 가족도 2박3일 일정으로 같이 머물다 갑니다.
저녁에는 형님들 둘 나 셋이나 맥주병 상당히 비웁니다.
다음날은 당일치기 여행을 갔다와서 저녁에 또 셋이나 맥주병 상당히 비웁니다.
그 다음날 모두가 돌아 갑니다.
연시는 겨울이라 상당히 추운데 일본의 주택구조상 거실은 상당히 따뜻한데 자는 방은 상당히 춥읍니다.
더구나 처가집은 시골이라 몸이 오그라 들 정도로 추운데 전기장판 깔아도 코로 들어 오는 공기는 매우 매서우므로
얼릉 집에 돌아 가고픈 마음 꿀떡같읍니다.
반대로 여름은 시원해 에어콘 없이도 잘 수 있어 좀더 머물고 싶은 마음이나 아쉬운 마음으로 돌아 오곤 합니다.
문제의,
처가집 식구와 둘째언니 가족과 우리 가족이 모이면 상당한 인원입니다.
그러나 여태까지 음식준비나 뒷치닥거리로 고생한다거나 갈등이 있다거나 하는 것은 전연 없지않았나 생각합니다.
명절이라 하여 제사를 지내거나 조상을 위한 음식장만은 전연없고, 근처에 있는 묘지에 가서 꽃을 놓고 초간단한
음식 놓고 묘비에 물을 뿌리고 합장하곤 돌아 옵니다.
식구들이 먹는 음식은 슈퍼에서 사온 음식들로 거의 장만이 돼 있으므로 그리 손볼 필요없이 그대로 해 먹고
덴뿌라는 보통 헤어지는날 점심때 먹기에 큰언니가 아침먹고 잠시 쉬었다가 튀기고,
하여튼 이런저런 준비는 하는데 고생이라고 하기에는 그렇고, 연로하신 장모님이 특별 음식을 준비하시는데
다른 사람은 못하니가 직접해야 하므로 좀 고생하신다고 하면 고생이랄까??
하지만 모두들 즐거워 하니까 정작 본인은 고생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일본의 특징중의 하나가,
회사원이라 하여 친구라 하여 하물며 친척이라 하여 찾아 가거나 찾아 오는 것은 거의 없읍니다.
친구들끼리 만나도 밖에서 만나 놀고 회사원이라고 인사가고 하는 것은 실례이기 이전에 그런 사고자체가 없읍니다.
물론 친척끼리 모이면 음식은 거의가 주문해서 먹는것 같읍니다.
전에 부인 외가집에 가보니 그랬읍니다.
장인(맡이) 형제중에 찾아 오는 사람은 거의 없고 가끔씩 작은 어머니가 방문(작은 아버지는 작고)하는 정도입니다.
결혼이나 초상을 치러는 경우에도,
집에서 음식장만한다고 오라가라 없이 예식장이나 장례식장에서 모두 처리합니다.
단지 참석 여부를 확인하여 음식을 주문하므로 간다고 해놓고서 안간다거나
안간다고 해놓고서 참석한다거나 하는 것은 상식에 어긋나는 일로 여기고 있읍니다.
물론 참석한다고 해놓고 어쩔 수 없이 사전 연락후 불참하는 경우는 있을 수 있을 지언정
불참이 돌연 얼굴을 내민다는 것은 엄청 비상식으로 여기고 있읍니다.
스크랩 댓글에서 제사와 차례의 장점으로 헤어진 친척이 한자리에 만나는 계기를 제공한다는 것을 꼽고 있었읍니다만,
앞으로는 제사 차례가 한자리에 모이게 하는 것보다 명절휴가가 한자라에 모이게 한다는 것으로의미를 부여한다고
여기고자 합니다.
나자신의 경우를 보더라도,
부친이 장기간 요양병원에 머물렀던 관계로 지금은 형제 모두가 뿔뿔이 헤어진 상태로 있읍니다.
멀지 않아 어머니마저 돌아 가시면 형제간이 남남이 되지 않나 생각합니다.
현실이 그렇게 된다면 받아 들일 것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제사는 초간결하게 모시라고 할 생각으로 있읍니다.
나중에 형님이 죽고 나면 자연히 제사는 사라질 것이고 내가 죽고 나면 내 자식들이 어떻게 할 것인지 죽은자가 어찌
알 것이겠읍니까?
시골 조상묘는 종가집이 대대로 제사 잘 모시라고 논이랑 산이랑 물려 받아 이어져 왔읍니다만 벌초때는 코뺴기도
내 밀지 않는다고 하고 종친 재산인 논과 산은 저들것이라 주장하는 현실인데
얼마가지 않아 조상묘는 버려질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농경문화에서 지역끼리 모여 살때는 친척 모두가 도와가며 살았지만 세월이 그렇지 않은데 옛것을 고집해서
살 수도 없고......